< 김선영 기자 > 1898년 미-스페인 전쟁을 끝으로 미국의 제 국주의적 영토 팽창은 일단 멈춰 섰다. 이후 1,2차 양차 대전을 거치고 냉전과 신냉전으 로 이어지는 과정에서도 현상( Status Quo) 은 유지되는 듯했다. 그러나 트럼프 2기 정부 들어 분위기는 일변했다. 19세기 전반에 걸쳐 미국을 지배했던 영토 팽창 숙명론( Manifest Destiny) 이 다시금 고개를 쳐든 것이다. 신 제국주의의 도래를 예고하는‘ 판도라의 상자’ 를 먼저 연 것은 러시아였다. 강대국에 의한 힘의 논리를 앞세운 우크라이나 침공이 그것이다. 러시아의 도발은2차 대전 종전 이 후 국제관계의 근간이 돼 왔던 국가주권주의 를 사실상 무력화시켰다. 핵을 뒷배 삼아 마 구잡이로 휘둘러대는 푸틴의‘ 무쇠 주먹’ 에 서구는 무기력하게 당하고 있다. 이같은 우크라이나 사태는 유럽과 미국에 천형( 天刑) 과 같은 짐이 됐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화( 禍) 를 기회로 삼는 반전을 시도 했다. 그린란드 병합이라는 역발상을 통해‘ 되치기’ 에 나선 것이다. 물론 미국의 그린란 드 획득 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알래 스카 매입에 이어 그린란드와 아이슬랜드에 대해서 매입이 거론되는 등 일찍이 부터 국가 적인 차원에서 북방 영토 확장 논의가 제기 됐었다. 트럼프의 이번 그린란드‘ 소유’ 천명 은 세계를 화들짝 놀라게 하고 있다. 그가 소 셜 미디어에 언급할 때만 해도 특유의‘ 허풍’ 정도로만 여기는 분위기였다. 그러다가‘ 반항(?) 하는 일부 유럽국들에 대해 관세로 압박 |
하더니 1 월의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는 미 국 대통령으로서‘ 정색’ 을 하고 그린란드 획 득을 못박고 나섰다.‘ 장난’ 이 아님을 공언한 것이다. 트럼프의‘ 세기의 도박’ 이 향후 어떤 결말을 가져올 지 예측은 쉽지 않다. 그린란드를 둘 러싸고 얽히고 설킨 이해관계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린란드 이슈가 향후 국제 정치 무대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 중의 하나 로 자리잡을 것임은 명확하다. 어느 날 갑자 기 불모의 동토( 凍土) 에서 열강의 무력 각축 장( 角逐場) 으로 뒤바뀐 그린란드의‘ 과거’ 와‘ 현재’, 그리고‘ 미래’ 를 점검해 본다. |
그린란드 자연환경과 역사 그린란드는 지명과는 달리 녹색과는 거리가 먼 빙상( ice sheet) 과 영구동토( Permafrost) 의 거대한 얼음덩이 섬이다. 크기는 약 216 만 km2로 유럽의 거의 절반, 한반도의 10 배 가량 되며 미국으로 치면 알래스카와 캘리포니아 를 합친 정도다. 육지의 80 % 이상이 만년빙 으로 덮여 있으며 정착지는 빙하 해안인 피오 르 지대를 따라 부분적으로 분포하고 있을 뿐 이다. 긴 겨울에 짧은 여름, 특히 내륙의 경우 고도가 높고 표면이 얼음으로 덮여 있어 극도 로 차갑고 건조하다. 게다가 심한 강풍과 폭 설, 그리고 여름철의 백야 및 겨울에는 해가 거의 뜨지 않는 극야( 極夜) 가 반복돼 한마디 로 사람이 뿌리를 내리고 살기가 여의치 않은 곳이다. 그나마 흙이 있는 곳도 거대한 빙하 위에 퇴적물이 얕게 쌓여있는 수준이어서 유 |
기물이나 영양분을 담은 토양은 찾기 어려운 탓에 농사는 커녕 식생 자체가 쉽지 않다. 이 런 불모지대에 인간이 정착을 시도한 것은 기 원전 2500 년쯤 부터로 추정되지만 여러 차례 멸종과 이탈이 반복되면서 제대로 된 거주지 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 그린란드에 유럽인 이 발을 들여 놓은 것은 982 년 노르웨이계 바 이킹인 에릭 더 레드였다. 그는 이주민들을 끌어 들이기 위한 마케팅(?) 차원에서 섬 이 름을 그린란드( Greenland) 로 명명했는 데 이들에 의해 섬 동부와 서부 일대에‘ 노르드 식민지’ 가 형성되기도 했으나 15 세기쯤에 사 실상 소멸했다. 유럽 문명이 자연과 기후에 결국 무릎을 꿇고 만 것이다. 이들과는 별개 로 13 세기경쯤 부터 알래스카 방향에서 툴레( Thule) 문화권 종족이 도래했는 이들은 수 렵과 어로, 이동 생활을 하면서 현대 그린란 드 이누이트( Inuit) 의 조상이 됐다. 바이킹이 사라진 동토에서 북극 극지 환경 에 최적화돼 살고 있던 이누이트들이 다시금‘ 상전’ 을 맞게 된 것은 1721 년으로 그린란드 는 이때 부터 공식적으로 덴마크의 식민지 가 됐다. 덴마크인들은 보호라는 명분 하에 행정과 상업 및 종교와 대외 교역을 통제했 고 이누이트는 법적- 사회적 하층민으로 전 락했다. 1953 년 그린란드는 덴마크의 식민지 지위에 서 종료돼 덴마크 본국의 일부로 편입됐다가 1979 년 자치령으로 바뀐다. 자체 의회( Inatsisartut) 가 설립, 기능하게되고 교육과 문화 등의 권한이 확대되다가 마침내 2009 년 자치 정부가 들어서게 됐다. 이를 기점으로 그린 란드인은 허나의 민족으로 인정되고 독립할 권리라 할 수 있는 자결권이 명문화됐다. 법 적으로는 독립이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홀로서기’ 가 요원한, 그래서 국방, 안보, 경제 는 덴마크에 의존하고 있는, 덴마크령으로 남 아있다.
그린란드와 미국 트럼프가 느닷없이 그린란드에 눈독을 들이 는 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 미국과 그린란드는 오랜 연고를 갖고 있다. 미국의 영토 팽창론( Manifest Destiny) 의 일환으로 알래스카에 이어 그린란드가 본격적으로‘ 물망’ 에 올랐던 것이 19 세기 후반이었다. 알래스카를 거머쥐 었던 당시 수어드 국무장관은 그린란드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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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란드 등 북방 영토들에 대해 각별한 관심 을 보였었다. 그러나 이후 흐지부지 됐다가 그린란드가 다시금 미국의 가시권에 등장케 된 계기가 나치의 덴마크 점령이었다. 1940 년 4 월 9 일 히틀러에 무릎을 꿇으며 5 년간으 로 약정된 독일의 점령 통치가 개시된지 1 년 뒤인 1941 년 4 월 9 일, 미국은 덴마크와‘ 그린란 드 방위협정’ 을 체결한다. 그린란드 방위가 어려워진 덴마크 대신 미국이 직접 나서 그 린란드 내 군사시설 설비와 지역 등을 사용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미국이 군사 및 행정적으로 관여를 하게 된, 즉 그린 란드 개입의 사실상의 출발점이었다. 2 차 대 전이 끝난 직후인 1946 년 미국은 좀더 적극적 으로 나와 그린란드 매입 제안까지 제시한다. 물론 덴마크는 거절했지만 이때 이후 부터 그 린란드 매입과 확보 이슈는 미국의 주요 현안 으로 남게 됐다.
그린란드의 전략적 가치 미국에게 있어 그린란드는 알래스카와 더불 어 러시아의 준동을 저지시킬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전략 요충지다. 대 러시아 ICBM 방어 망을 구축하는 데 있어 절대로 필요한 길목이 되기 때문이다. 러시아 ICBM 이 미국 공격에 나설 경우 최단거리 궤적은 북극 상공을 통하 는 것이다. 이같은 경로에서 미국의 촉수 역 할을 하는 센서가 배치, 가동돼고 있는 곳이 바로 그린란드다. 그린란드 레이더를 통해 미 국은 수분에 달하는 조기 탐지와 대응 시간을 벌 수 있다. 분초를 다투는 탄도 미사일 공격 과 방어에서 몇 분이 갖는 의미는 크다. 그린 란드는 미국의 생존권을 획기적으로 제고시 킬 수 있는 결정적인 어드밴티지를 제공한다. 한마디로 그린란드 없는 미국의 미사일 방어 망( MD) 역량은 절름발이와 다름없는, 반쪽 수준으로 약화된다고 되는 것이다. 이같은 ICBM 조기 경보 레이더 역할 외에 그린란드는 러시아 핵잠수함의 북대서양 진 출을 탐지, 차단하는 핵심 전략선 역할도 한 다. 즉 러시아 핵잠들이 북대서양쪽으로 나 오려 할 때 나토는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 및 영국을 잇는 해상 감시선, 이른바 GIUK 라 인( Greenland-Iceland-UK) 을 통해 이들 의 준동을 탐지하고 저지에 나설 수 있기 때 문이다.
▶11 면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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