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8 2026 년 3 월 20 일- 2026 년 3 월 26 일 미국 사회
▶4면 < 이란 최고지도자 > 에 이어 호메이니가 1989년 임종을 앞두고 있을 때, 하메네이와 같은 하위 계급의 성직자가 최고 지도자 자리를 계승할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 되었다. 호메이니의 신학생이었던 하메네이 는 아야톨라보다 낮은 지위에 있었고 종교보 다는 정치에 더 관심이 많았다. 시아파 성직자 계층 내에서, 그리고 아야톨라 밑에서 공부한 다른 이슬람 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는 ' 호 자트 알-이슬람 ', 즉 ' 이슬람의 증거 ' 라는 칭 호를 받았고 아야톨라에게 요구되는 고도의 독자적인 추론 능력, 즉 이즈티하드는 갖추지 못했지만, 이슬람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은 보 유하고 있었다. 호메이니의 후계자로 임명된 후, 하메네이의 지위는 하룻밤 사이에 대아야 톨라로 격상되었다. 이런 임명의 이유는 하메 네이가 호메이니만큼 카리스마와 종교적 권 위는 부족했지만, 오랫동안 정권에 충성해 온 내부 인사였기 때문이다. 1989년까지는 저명한 신학자이자 혁명 지도 자인 후세인 알리 몬타제리 대아야톨라가 최 고 지도자 자리를 계승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그해, 그는 결국 호메이니에게 선택받 지 못하고 혁명수비대에 구금되었다. 몬타제 리는 하메네이의 최고 지도자 자격에 의문을 제기하고 정권의 탄압, 특히 1988년 4명의 검 사로 구성된 위원회가 수천 명의 정치범을 처 형한 사건을 비난했기 때문에 이런 운명을 맞 았다. 1997년에도 하메네이를 계속 비판한 몬 타제리는 강경파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가택 연금에 처해졌다. 2003년, 의회의 압력을 받은 개혁파 대통령 모하마드 하타미에 의해 석방되었다.
오늘날의 후계 구도 상황 수년 동안 최근 암살된 최고 지도자의 아들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차기 지도자로 선출되 었다. 그러나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공개 적으로 이를 반대했기 때문에 생전에는 그런 시나리오가 실현될 가능성은 희박해 보였다. 그는 세습이나 왕조 계승을 단호히 거부하는 정치 및 종교계 인사들의 반감을 사지 않기 위 함이다. 세습이라는 개념 자체가 1979 년 무함 마드 레자 팔라비 샤가 이끌던 군주제를 전 복시킨 이란 혁명의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되 거나 금기시되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정치적 관점에서 볼 때, 모즈타바는 공직을 맡은 적이 없다. 반면 그의 아버지는 1981 년 부터 1989 년까지 이란의 세 번째 대통령을 역 임했다. 종교적으로 볼 때, 모즈타바는 최고 지도자가 되기 전의 아버지처럼 중견 성직자 에 불과하지만, 유명한 쿰 신학교에서 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정치적
최고 지도자는 종교적 영적 리더로 세속적 권력 보유 이란 권력 구조 속 보수 강경파 계속 득세 예상
인 목적에서 전문가 회의는 종교적 자격이 없 더라도 모즈타바를 대아야톨라로 승격시켜야 한다. 하메네이가 암살되자, 이란과 시아파 이 슬람에서는 그를 순교자로 추앙한다. 그랜드 아야톨라에 준하는 자격을 갖춘 몇몇 고위 성 직자들도 함께 거론되었으나 아들인 모즈타 바가 최고 지도자로 선출된 이유 중 하나는 과 격한 급진성향의 혁명수비대가 압력을 넣었 다는 설이 유력하다. 분쟁이 계속되고 있고, 임시 지도위원회가 구성되어 있음에도 불구 하고, 전문가 회의는 체제 유지를 위해 후계 자를 모즈타바 하메네이로 결정하면서 1989 년부터 시작된 종교적 원칙보다 정치적 선호 를 우선시하는 추세가 계속되었다.
다른 권력 기구들 1979 년 혁명 이후, 새로운 헌법은 대통령직 을 신설했다. 첫 대통령 선거는 1980 년에 실시 되었다. 최고 지도자가 국가 원수인 반면, 대 통령은 정부 수반이다. 최고 지도자 다음으로 대통령은 행정부의 2 인자이며, 최고 지도자에 게 책임을 지고 그의 명령을 집행한다. 대통령 선거는 4 년마다 18 세 이상의 이란 국 민이 참여해 실시된다.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 하더라도 두 번 이상 연임할 수 없다. 선거 전
모든 후보자는 최고 지도자가 통제하는 헌법 수호위원회의 신임 심사를 받는다. 대통령은 내각 의장으로서 의회의 신임 투표를 거쳐 각 료를 임명한다. 그렇지만 최고 지도자는 부통 령과 함께 이들을 해임하거나 복직시킬 권한 을 갖고 있다. 1979 년 새 헌법에 따라 지도력 전문가 회의( Majles-e Khobregan-e Rahbari) 가 설립되었고, 같은 해 첫 선거를 치렀 다. 헌법 제 111 조는 이 회의에 최고 지도자를 임명, 감독하고 필요시 해임할 권한을 부여한 다. 이런 의미에서 회의는 심의 기관의 역할 을 하며, 법적으로 6 개월에 최소 두 번 이상 소 집되어야 한다. 회의록은 엄격하게 기밀로 유 지되며 일반에 공개되지 않는다. 전문가 회의 는 약 80 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아야 톨라 또는 무즈타히드로서 이슬람법 전문가 이며, 이즈티하드( ijtihad) 라는 독자적인 추 론을 행사한다. 이슬람 공화국 역사에서 헌법 수호위원회 위원 수는 1982 년 82 명에서 2016 년과 2024 년에는 88 명으로 바뀌었다. 위원들 은 8 년 임기로 이란 국민의 직접 또는 국민투 표로 선출된다. 최고 지도자가 장악하고 있는 헌법수호위원회는 출마를 신청하거나 선거에 참여하는 모든 후보자를 심사하기 때문에 선 거 과정은 자유롭고 공정하다고 보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유권자들의 선택은 보수파와 강 경파로 제한되었고, 현재 이들이 전문가회의 를 장악하고 있다. 이란 헌법에 따르면 헌법수 호위원회는 국민이 선출한 의회가 통과시킨 법률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또한 대통 령, 국회의원, 전문가회의 선거를 포함한 각종 선거 후보자를 검증할 권한도 있다. 위원회는 이슬람법과 법학을 전문으로 하는 12 명의 법 학자와 변호사로 구성된다. 위원들은 6 년 임 기로, 3 년마다 절반씩 교체된다. 최고 지도자 는 위원의 절반을 임명하며 언제든지 해임할 수 있다. 나머지 절반은 대법원장이 의회의 신 임 투표를 거쳐 임명한다. 최고 지도자가 대법 원장을 임명하기 때문에 사실상 헌법수호위 원회를 장악하고 있다. 그 결과, 혁명수비대 와 연계된 세력을 포함한 보수파와 강경파가
의회와 전문가회의를 점점 더 장악하게 되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수호위원회는 온 건 개혁파인 현 대통령 마수드 페제시키안 당 선을 막지는 못했다. 1988 년 헌법이 개정되어 국정조정위원회가 설립되었다. 위원장과 위 원들은 최고 지도자가 5 년마다 임명한다. 위 원회는 초기에는 13 명의 위원으로 구성되었 다. 국정조정위원회는 초기에는 헌법수호위 원회와 의회 간의 법률 관련 분쟁과 이견을 중 재하고 해결하는 행정 기구 역할을 했다. 수 년에 걸쳐 헌법 제 110 조와 제 111 조에 근거해 위원회는 최고 지도자에게 국내외 정책 및 전 략에 대한 자문을 제공하는 기구로 발전했다. 1990 년대 후반부터 2000 년대 초반까지 하메네 이는 국정조정위원회를 이용해 개혁파 다수 의회의 권한을 축소하고 대법원장이 임명한 헌법수호위원회 위원 6 명에 대한 승인을 압박 했다. 2007 년 이후로는 27 명의 위원으로 구성 되어 있고, 전원은 최고 지도자가 임명한다. 이란 이슬람협의회는 이란의 의회 역할을 하 며, 단원제 국가 입법 기관이다. 의원들은 4 년 임기로 국민 투표를 통해 선출된다. 의회는 행 정부와 함께 법률을 제정하거나 새로운 법률 을 제안할 수 있다. 그러나 헌법수호위원회가 해당 법률이 헌법 이나 종교에 위배되거나 충돌한다고 판단할 경우, 의회의 법률 제정 권한은 제한된다. 의 회는 대통령이 임명한 내각 구성원을 승인하 는 의결권을 갖고 있다. 또한 최고 지도자와 함께 내각 구성원을 해임하고, 대통령의 직무 상 비리를 이유로 탄핵할 수 있다. 1979 년 이후 의회는 6 명의 의장이 의장직을 맡아 왔고, 2020 년부터는 이란의 주요 무장 조 직인 혁명수비대 사령관을 지낸 보수 성향의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가 그 자리를 이어 받았다. 역사적으로 낮은 41 % 의 투표율을 기 록한 2024 년 총선에서 헌법수호위원회는 대 부분의 온건파 및 개혁파 후보들을 실격 처리 했다. 이로써 보수파와 강경파는 290 석 중 233 석을 확보하며 압도적인 다수당이 되었다. 이 처럼 복잡한 인물과 제도의 구도 속에서 모즈 타바 하메네이가 최고 지도자로 임명되었다. 그는 이슬람 공화국 통치 구조의 정점에 서 있지만, 그에게만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최 고 지도자를 또 암살하더라도 이란 권력 구조 속에서는 보수 강경파가 계속 후계자로 등장 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