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 > 매사추세츠
< 김용일 기자 > 미국 독립전쟁 초기 전투들은 대부분 매 사추세츠 땅에서 일어났다. 매사추세츠는 명실공히‘ 저항의 땅’ 으로서 전쟁 국면을 주도했다. 대영 항쟁을 선도한 매사추세츠 식민지 는 이후 전투가 식민지 전역으로 확산해 나간 뒤에도 지속적으로 병력 및 보급 지 원에 나서는 등 주축주( 主軸州) 역할을 했 다. 일찍이 통상과 무역 등에 눈을 떴기에 선박 건조, 해상 운항에 강했다. 이 특성을 살려 매사추세츠 식민군은 대륙군의 해군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뉴욕, 버지니아, 조 지아에 이르는 전선에 병력과 군수물자를 조달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매사추세츠는 말 그대로 미국 독립에 있 어 선각자, 선구자 역할을 했다. 주의 면적 은 2 만 9 천 km2 로 미 전체의 3 백분의 1 정 도에 불과하지만 명실공히‘ 머리’ 노릇을 했다. 매사추세츠는 영국이 아메리카 식민지 개척에 있어‘ 첫 삽’ 을 뜬 곳이었다. 1620 년 9 월 1 백여명의 영국인들이‘ 메이 플라워’ 호를 타고 지금의 프로빈스 타운 항구에 닻을 내렸다. 이들은 차츰 정착촌 을 늘려 나가면서‘ 플리머스’ 식민지를 태 동시켰다. 플리머스에 이어 매사추세츠 만 에도 정착지가 늘어났다. 첫 발을 디딘 뒤 20 년 만에 이 일대에는 1 만여명의 정착민 들이 자리를 잡게됐다. 영국으로 부터 다양한 사람들이 식민지 정착을 위해 이주해왔지만 이 곳 정작민들 의 주류는 청교도였다. 정치적으로는 왕정 을 피해 개인의 자유와 정치적 자유, 민권 수립을 추구하는‘ 깨어 있는’ 사람들이었 다. 이를 반영하 듯‘ The Spirit of America’ 는 매사추세츠주의 별칭이다.‘ 미국 정 신’ 의 뼈대라는 자부심이 가득 배어있다.
매사추세츠는 훗날 남북전쟁이 일어났을 때도 북부군의 주축이 됐다. 정치적 자유, 인권 신장을 모토로 삼았고 당연히 노예 해방의 강력한 후원자가 됐다. 남북전쟁 당시 매사추세츠주는 연방 육 군에 연 12 만 5 천명 이상을, 해군에는 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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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명 이상을 동원 배치했다. 독립전쟁 때 처럼 많은 북군 전함, 수송함 건조 및 병 력과 보급물자 운송 등에 지대한 기여를 했다. 매사추세츠는 산업 역량, 인구 등 면에서 도 뉴잉글랜드 지역 식민지들의‘ 맏형’ 이 었다. 독립 선언 이전인 1680 년 뉴햄프셔 가 매사추세츠에서 떨어져 나갔고, 메인주 는 한참 뒤 까지 매사추세츠의 일부로 남 아있었다. 매사추세츠 면적은 미국내 다른 주에 비해 작지만 인구수는 6 백만명이 넘 어 50 개주 가운데 13 위를 차지하고 있다. 매사추세츠는 미국내 정치 성향에 있어 민주당의‘ 본산’ 과 다름 없는 곳이다. 일찍 이 청교도들이 주축이 돼 민권과 자유를 주창했고, 연방 상하의원이 모조리 민주당 출신인 요지부동의‘ 블루 스테이트’ 다. 인 구도 많은 편이기에 미국 대선에 배당된 선거인단수도 11 명을 가지고 있다. 통상 백인들이 많은 곳은 보수 성향이 강 한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매사추세츠 는 백인유권자가 전체의 4 분의 3 가량에 달함에도 확실한 민주당 색깔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 근대정치에 있어 최고의 정치 가문 으로 곱히는 케네디가( 家) 의 본거지가 바 로 매사추세츠주다. 존 F 케네디 대통령에 이어 동생 로버트 케네디는 잇따른 암살로 정치적 웅지를 크게 펴지는 못했지만 케네 디가의 명망은 막내 동생 에드워드 케네디 까지 이어진다. 에드워드 케네디는 매사추 세츠 연방 상원의원만 47 년을 역임했을 정 도다. 이번 2024 년 대선에서는 로버트 케 네디의 아들 로버트 주니어가 제 3 의 후보 로 나서고 있는 데 케네디가의 후광이 녹 록치 않아 바이든- 트럼프 후보 모두 촉각 을 세우게 하고 있다. 매사추세츠의 산업은 군사연구, 군수 등 외에도 금융, 의료, 교육, 보험 등‘ 두뇌’ 산 업에서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일찍이 미 국의‘ 머리’ 를 자처했던 곳인 만큼 주민들 의 교육수준도 월등히 높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전체 주민의 절반 이상이 대학 교 육 이상을 받은 사람으로 미국 평균 24 % 의 배가 된다. 한마디로 똑똑하고 공부 잘 하는 사람이 많이 사는 곳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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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사추세츠의 리버럴 성향은 사회 전반 에서 그대로 드러나 동성혼 합법화 등 성 소수자 관련 이슈 등에 있어 미국내에서도 선도적으로 전향적인 스탠스를 취하고 있 다. 2004 년 5 월, 미국서 최초로 동성결혼 을 인정한 곳이 바로 매사추세츠주다. 반 면 청교도적 전통의 영향이 강해 거리에 서 술병을 드러낸 채 음주하면 안되고 일 요일에는 술을 못 파는 등의 엄격함도 여 전한 곳이다. 매샤추세츠는 위도가 41-42 도로 한반도 의 신의주 보다도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하지만 최고봉이 한국의 속리산과 비슷 한 1,063m 에 평균 고도는 150m 로 한국의 482m 보다 훨씬 낮은, 넓은 구릉지 같은 지형이다. 날씨는 한국의 중북부와 비슷한 편이나 특히 겨울철에는 눈이 지천으로 내려 툭 하면 설국이 된다. 2014 년 겨울과 다음해 에 걸쳐 총 적설량이 1.6 미터에 이른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눈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 보스턴 > 보스턴( Boston) 은 매사추세츠의 주도( 州都) 이자 최대 도시다. 또 광역 도시권 규 모로는 뉴욕, LA, 시카고, 워싱턴 DC 등 에 이어 미국 5 위를 차지한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보스턴의‘ 무게’ 를 담기에 부족 하다. 영향력과 선도적인 위상에 있어‘ 아메리 카의 베네치아’, 학문과 예술의 본산으로 서‘ 미국의 아테네‘ 등으로 불릴 만큼 북 미 대륙의 최고, 최대 도시였다. 실제로 보스턴을 수식하는 최고( 最高) 나 최고( 最古) 는 너무 많다. 세계 최고의 대학 하버드- MIT, 미국 최 고- 최대의 고도( 古都), 미국 최고의 학문- 예술의 본향, 최고( 最古) 의 교회, 도서관, 최고의 공원, 공립학교 등등, 붙는 것 마다 온통 최고 일색이다. 보스턴은 넓이 232.11 km2로 서울의 40 % 가 량 크기다. 지금 서울이 그대로 대한민국 이듯 보스턴은 한마디로 식민지 시대 미국 의 중심이자 그 자체였다. 보스턴의 가장 큰 자부심은 보스턴이 명 실상부한 미국의‘ 정신적 지주’ 라는 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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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온다. 미국 독립전쟁의 불씨가 된‘ 보스 턴 차( 茶) 사건, 보스턴 학살 사건’, 독립전 쟁의 서막이 됐던‘ 렉싱턴- 콩고드 전투’,‘ 벙커 힐’ 전투 등이 모두 보스턴에서 비 롯됐다. 단순히 사건만 발발 시킨 것이 아니라 매 사추세츠를 대표, 실제로 독립전쟁의 주역 을 담당했다. 나아가 미국의 건국 이념 뼈대 구축에 가 장 큰 영향을 미쳤다. 남북전쟁 때는 노예 제 폐지 운동의 중심지가 됐다. 이런 배경 을 가지고 있기에 보스턴의 곳곳에는 역사 적 유물들이 미국내 어느 곳 보다 많다. 매 사추세츠 주 의사당에서 시작하는‘ 프리덤 트레일( Freedom Trail)’ 은 보스턴이 지 니고 있는 생생한 역사의 현장들을 고스란 히 보여주고 있다. 보스턴의‘ 최고 시리즈’ 는 현재에도 기능 하고 있다. 학문의 중심지 답게 보스턴 일원에는 대 학 35 개를 포함, 85 개의 교육기관이 자리 하고 있다. 하버드, MIT 외에, 보스턴대, 보스턴 컬리지, 터프츠대, 인문대학의 최 고봉 윌리암스, 엘머스트 컬리지, 버클리 음악대학,, 명문 사립고 필립스 아카데미 등등 초등교에서 대학원까지 최고 수준 의‘ 상아탑’ 들의 요람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 보스턴 교향악단, 보스턴 발레, 보스 턴 오페라 하우스 등이 자리한 최고의 예 향( 藝鄕) 이며, 보스턴 글로브, 보스턴 헤 럴드,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 등은 미 국내 최고의 권위지로 평가받는 언론들 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미국의 지성’ 보스턴이 지만, 여타 미국인들의 보스턴에 대한 인 식이 마냥 후한 편은 아니다.“ 머리 좋고, 잘 났지만, 매사에 손톱 만큼도 손해를 안 보려 드는 …” 식이다. 그런 정서가 반영돼서 인지 보스턴의 운 전 환경은 거칠기가 짝이 없다. 미국내 살 기 좋은 10 대 도시로 항상 꼽히면서도 동시 에 운전 매너에 있어서는‘ 미국내 최악’ 의 도시라는 꼬리표도 늘 따라 붙는 곳이다. 보스턴은 익히 짐작되듯이 민주당의 아 성이며. 뉴욕, LA, 시카고와 더불어 미국의 진보를 리드하는‘ Progressive 4’ 로 꼽히 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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